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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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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에 난 구멍은 모두 몇 개일까요? 아침저녁으로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집중력을 높일 수 있는 가을날~ 여러분의 두뇌를 잠시 사용할 수 있는 난센스 퀴즈를 풀어보세요. 띄엄띄엄 보면 아무나 풀 것 같이 쉬~워 보이지만, 10초 안에 대답하면 틀린 답이 먼저 나옵니다. 바지에 난 구멍은 모두 몇 개일까요? 눈 크게 뜨고 한번 찾아보세요!
무거우면 내려놓으면 되지 옛날 한 젊은이가 지혜 있는 노인을 찾아가 물었습니다. "어르신, 저는 지금 매우 힘든 삶을 살고 있습니다. 매 순간 스트레스로 인해 너무나도 힘이 듭니다. 저에게 행복해지는 비결을 가르쳐주십시오." 이 말을 들은 노인이 젊은이에게 가방을 건네며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 정원을 가꾸어만 되니 기다려 주게나. 그리고 이 가방을 좀 들고 있게." 가방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크게 무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가방이 무겁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 시간이 지나자 어깨가 쑤셔왔습니다. 하지만 노인은 멈추지 않고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기다린 젊은이가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어르신, 이 가방을 언제까지 들고 있어야 합니까?" 그러자 노인이 젊은이를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아니..
슈퍼맨 아빠의 '즐거운 나의 집' 지난 2014년 어느 날, 깊은 잠에 빠져있는 평온한 가정에 불이 났습니다. 다행히 아내와 큰딸, 3살 아기는 다 빠져나왔는데 둘째 서빈이가 보이지 않자 아빠는 불길이 솟구치는 집으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서빈이를 이불로 감싸 안은 아빠는 불길에서 정신을 잃습니다. 다행히 소방관분들에 의해 아빠와 서빈이는 구출되었지만, 아빠는 큰 화상으로 왼쪽 팔을 잃었습니다. 사연이 나간 이후 많은 분들이 후원이 손길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병원을 오가며 꾸준한 치료를 받고 있지만 이제는 몸도 마음도 아주 건강해진 상태입니다. 오랜만에 본 서빈이네 가족은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큰딸 유진이가 따뜻한 하루 가족분들께 전달해 달라며 한 통의 편지를 건네주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서빈이 누나이며 어느덧 고등학생..
가장 아름다운 약속 조용한 성격의 강희(가명)는 집에만 오면 수다쟁이가 됩니다. 온종일 혼자 계셨을 아빠를 즐겁게 해드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아빠는 그런 강희가 고맙고 안쓰럽기만 합니다. 오래전 엄마와 이혼한 아빠는 사랑하는 딸에게 엄마가 없는 빈자리를 채우고자 매일 쉬지 않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심장에 이상이 생겨 쓰러진 뒤 큰 수술을 받고 2년 후 또 안암이 발병하여, 한쪽 눈을 실명했습니다. 그러던 중 다니던 직장까지 잃었습니다. 손재주가 많은 강희는 그림 그리기와 피아노를 좋아합니다. 남들처럼 학원에 다니고 싶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홀로 방에서 학교에 다녀오는 딸아이를 기다리는 아빠를 위해 오늘도 강희는 학교가 끝나면 일찍 집으로 옵니다. 지금도 우리 주위에는 기본 생계비와 교육비가 부족해 마음껏 꿈..
공의를 바로 세우다 옛날 어느 나라에 효성이 지극한 왕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왕은 백성들에게도 존경받을 만큼 인자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법을 지키지 않았을 때는 누구라도 엄한 형벌로 40대의 태형으로 다스렸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왕의 어머니가 법을 어기는 일이 생겼습니다. 신하들은 저마다 근심스러운 얼굴로 수군거렸습니다. '저 효성이 지극한 왕이 자기 어머니를 어떻게 할 것인가? 만일에 어머니라고 봐준다면 나라의 공의와 질서가 무너져 버릴 텐데 어찌할 것인가.' 왕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한참 만에 무겁게 입을 열었습니다. "짐의 어머니를 기둥에 묶으라, 그리고 법대로 40대를 치라!" 왕의 명령에 일순간 다들 놀라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왕의 명령을 어길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매를 치려는 순간 왕은 어머니..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는 법 #불안의 시대 아버지 이야기 나이 예순, 내 직업은 대리운전기사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내 일은 시작됩니다. 언제 올지도 모르는 호출을 기다리면서 밤거리를 서성입니다. 하루 평균 다섯 시간은 뛰거나 걸어야 하는 이 일이 이제는 힘에 부치기 시작합니다. 그런 나에게도 빛나는 시절은 있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했고 가정도 꾸렸습니다. 곧 아들 둘이 태어났고, 아이들의 재롱을 보며 행복했습니다. 성실하게 할 일만 하면 안정된 삶은 계속될 거로 생각했습니다. 평생직장이 당연하던 그 시절 미래를 의심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1997년, IMF와 함께 내 기대는 하루아침에 무너졌습니다. 가족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아무 일이나 닥치는 대로 했습니다. 하지만 한 번 무너진..
비 오는 날 수채화 시장에서 찐빵과 만두를 만들어 파는 아주머니가 계셨습니다. 어느 날, 하늘이 갑자기 흐려지더니 후두둑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소나기겠지 했지만, 비는 두어 시간 동안 계속 내렸고, 도무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주머니에게는 고등학생 딸이 한 명 있었는데 미술학원에 가면서 우산을 들고 가지 않았다는 것이 불현듯 생각났습니다. 아주머니는 서둘러 우산을 들고 딸의 미술학원 앞으로 갔지만, 학원에 도착한 아주머니는 들어가지 못한 채 주춤거리고 서 있었습니다. 부랴부랴 나오는 통에 밀가루가 덕지덕지 묻은 작업복에 낡은 슬리퍼, 심지어 앞치마까지.... 감수성 예민한 여고생 딸이 혹시나 엄마의 초라한 행색에 창피해 하진 않을까하는 생각에 아주머니는 옆 건물에서 딸이 나오길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한참..
딸의 안경이 마음 아픕니다 제발! 하고 바랐는데... 결국, 일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이제 다섯 살 된 딸아이가 대학병원 검진 후, 난시가 심하다는 진단을 받고 안경을 쓰게 되었습니다. 딸에게 난시는 저와 같은 상황이 진행될 수 있기에 두려운 뜻이기도 했습니다. 막상 안경 쓴 모습을 보니 아빠 된 마음이 저려 옵니다.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희귀병을 지닌 제가 딸에게 나쁜 시력을 물려준 것 같아 죄책감이 듭니다. 장애아동을 둔 부모님의 마음과 장애를 지닌 자신의 마음은 이미 알고 있는데... 내게 선택권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는데... 딸의 안경을 보니 그저 마음이 먹먹하고 아려옵니다. 각자 세상의 마지막 날 깊은 어둠을 맞이하게 되지만 저는 희귀병으로 인해 어두움을 먼저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딸의 안경이 가슴 아프기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