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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트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될 테니까

머리 위에 100kg짜리
쇳덩이를 얹어 놓은 듯 무거웠다.
땅 아래에서 누가 발목을
힘껏 잡아당기는 듯
몸이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았다.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될 테니까

머리 위에 100kg짜리 쇳덩이를 얹어 놓은 듯 무거웠다. 땅 아래에서 누가 발목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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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몸을 추슬러 집에 도착하니
저녁 8시 20분.
인생의 많은 시간을 길에
쏟아부어야만 하는
경기도민에게는 흔한 일이다.
다 놓아 버리고 이불 위에 몸을
내던지고 싶었지만 시간이 빠듯했다.
옷을 갈아입고, 손을 씻고, 밥을 먹고,
양치를 하고 다시 집을 나선다.
저녁 9시
마지막 요가 수업을 맞추기 위해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앞 수업을 끝내고 나오는
사람들을 헤치고 센터 안으로 들어갔다.
은은한 조명과
인센스 향이
차분하게 내려앉아 있는 곳.
수업 시작 10분 전 도착은 내 철칙이다.
남들이 보건 말건 욕을 하든 말든
목, 어깨, 허리, 다리 순으로
차근차근 몸을 푼다.


수업 시작하기를 기다리며
스마트폰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보기에
유난스럽게 보일 이 워밍업이 없다면,
본 수업 시간은 그저 고문일 뿐이다.
선생님의 구령에 맞춰
뼈와 근육을 움직이다 보면
내 몸은 어느새 갓 뽑아낸
가래떡처럼 따끈하고 말랑해진다.
선생님의 시범만 보면
이게
될까 싶은 동작들을
하나하나 따라 하다 보면 이게 된다.


내 몸은 아직 버티는 힘은 부족하지만
사부작사부작 제법 흉내는 낸다.
단 1시간. 은근히 땀을 빼고 난 후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
센터 문을 열고 나오면
부드러운 봄바람이 열을 식혀 준다.

"오늘 진짜 오기 싫었는데,
어쨌든 오길 잘했어."

요즘 내가 가장 많이 하는 일은
‘거절당하기’다.
누군가를 설득하고 반응을 살피고
우리에게 유리한 쪽으로
결정을 이끌어 내는 일.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이 일은 마치 지난 대통령 선거 때
‘허 후보’가 시도했던
‘전화 총력전’과 비슷하다.
모르는 사람을 설득하고, 질척이고,
내키지 않아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내 에너지를 빼앗는
3대장 키워드,
#낯선 사람 + #설득 + #거절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일이다.

단 한 번의 OK를 얻기 위해
100번 이상의 거부를 당하는 게 일이다.
그러니 퇴근 무렵쯤 되면 몸도,
마음도 탈탈 털린다.
집에 가기 전 화장실에 들러
거울을 보면 그 안에는
기름 낀 잔머리는 어지럽게 널려 있고,
눈이 쑥 들어간
시멘트톤 얼굴이 들어 있다.
매일 보는 얼굴인데도 이때쯤에는
폭발하는 못생김을 못 봐줄 정도다.
“안 됩니다.”
“필요 없습니다.”
“어렵습니다”
“불가능합니다”
“안 합니다”
같은 부정적인 단어들이 사람에게
얼마나 악영향을 미치는지를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다.

온종일 부정적인 에너지가 몸에
차곡차곡 쌓이니 신경은 예민해지고,
짜증이 폭발한다.
흔한 말로 ‘기가 빨리’는 일과
에너지 뱀파이어 같은 사람들에게 치인
하루를 보내면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다.
이전에도 종종
이런 상황들에 놓인 적이 있다.
맵고 짜고 단 음식들을 배에 채운 채
잠드는 게 유일한
에너지를 채우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파릇할 때의 방법이지
언젠가부터는 먹히지 않았다.
속은 망가졌고, 잠도 잘 오지 않았으니까.

지금은 몸이 가라앉으면
일단 자리를 뜬다.
부정적인 기운이 가득한 곳을 벗어나
신선한 공기와 활력을
줄 수 있는 곳으로 도망친다.
요즘 최애 장소는 요가센터와 산이다.
나쁜 음식을 먹고,
스마트폰이나 들여다보는 건
순간의 에너지를 얄팍하게 채울 뿐,
그 효과는 오래가지 않았다.
내 기준에
그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이다.
그저 시간과 몸을 죽이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될 거 같다는
두려움에 자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게 된다.
요가 센터와 산. 이 두 곳의 공통점은
딴생각을 할 여유가 없게 만든다는 점이다.

요가 센터에서는
목표 동작을 완성하기 위해 몸을
풀고, 척추를 펴고, 몸을 구기다 보면
땀과 함께 내 안에 차곡차곡
쌓인 불안과 부정적 감정들이
몸 밖으로 나온다.
산에서는
표지판을 따라 정상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오르다 보면
허벅지는 불타고, 허리가 뻐근하다.
자칫 방심하면 엄한 길로 갈 수
있기 때문에 집중해 올라간다.
정상에서 산 아래를 내려다보며
시원한 물 한 모금을 마시면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왜 산에
기어 올라
간다고 했을까?’
나를 자책했던 시간이 씻은 듯 사라진다.


산정상


(나 한정) 투자한 시간과 비용 대비
이보다 좋은 에너지 충전 방법이 없다.
요가 센터와 산에 가지 않았다면
그 시간에 난 뭘 했을까?
스마트폰이나 들여다보고 있겠지 뭐.
그게 아니라면 책 몇 장 읽다가
다시 스마트폰 들여다보겠지 뭐.
스마트폰을 쥐고 뒹굴거릴
내 모습이 눈에 선하다.

예전이었다면 일과 후회만 있던
내 일상이 어느새 변했다.
주중에 나를 꾸깃꾸깃하게
만드는 일을 마주할 때마다 생각한다.

" 저녁에 요가 센터 가야지.

" 주말엔 산에 가야지.
가서 다 털어 버려야지.

삶의 무게 중심이 ‘일’ 너머로 옮겨갔다.
이제야 비로소 옳게 변하고 있다.


[출처 : ㅍㅍㅅㅅ 2022-05-19 원문_호사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