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OCKTAIL

나는 바텐더이다

경산 내려가는 고속버스 안에서 추억에 잠겨봅니다.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물론 오늘 쉬는날이라 '동서울'(아침11시버스)에 '올림픽대교'건너고 있는 지금 
버스안에서도 시간은 흐르고 있습니다. 월요일이지만 고속도로 진입로쪽은 차가 밀리네요. 평창올림픽대비 고속도로 공사중 
팻말도 보이구요. 하남 만남의광장 지나서 동서울 톨게이트 통과합니다. 
왼쪽 오른쪽으로 푸르름이 가득한 산의 모습이 청량감을 더 하는 오늘입니다.

웬지 고속도로가 친근한 모습은 어렸을적 항상 봐 왔던 공간이라 그런것같아요.
'충청도 영동 황간 회포리'라는 산자락아래에있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는데 
큰 산으로는 '백화산'이 있고 앞에 흐르는 강물은 '금강' 물줄기이고 고속도로가 있는데 '경부고속도로'. 
그러니까 경부고속도로 도로변마을입니다. 고속도로 아래로 '굴따리'를 통과하면 우리마을이었고 
파란색 기와집이 우리 집 이었답니다. 마을 끝자락부분으로 오솔길마냥 그 길을 쭈욱 따라 걸어서 가면 
고속도로에 도달할 수도 있었지요. 도로 갓길로 걸어서 아님 큰 다리 아래로 걸어서 건너편으로 건너기도하고 때론 물살이 약한 쪽으로 옷 걷어 올리고 맨발로 강을 건너기도 했답니다.
일반고속버스타는 정류장이 거기 있었거든요.

지금에 '황간휴게소'가 거기랍니다. 다리건너'개미식당'이라고 있는데 어렸을적 부터 있던 식당이랍니다.
지금도 있더라구요. 상당히 오래 됐죠. 언덕배기 같은 곳을 지나면 용산,청산,보은 가는 길인데 
어렸을적에 엄마,아빠랑 한번씩가서 길은 어떻게 가는지는 잘 모릅니다. 외할아버지 할머니,친할아버지가 청산에 사셨거든요. 우리 할아버지는 항상 짧은 스포츠흰머리에 하얀 모시저고리만 입으시고 방앗간을 하셨지요.어머니 형제분들은 보은에 계시구요. 청산에서 보은가는 시외버스를 탔던 기억도 어렴풋 나네요.
'개미식당'을 지나서 길따라 걸어가면 산아래 '용암국민학교'나옵니다. 왼쪽 가슴에 '하얀 콧수건'달고 입학해서 4학년초까지만 다녔어요.1학년때 담임선생님은 연세 많으신 '검정색 뿔테 안경'을 착용하신
(성함이 박자춘자길자로 기억) 많이 인자하시고 따뜻했던 선생님으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1학년때 기억으로는 네모가 큰 공책에 글씨 썼던 기억과, 집에서 엄마랑 아빠랑 그림 색칠 했던 몇가지 
기억만 있네요.

항상 '검정고무신' 을 신고 다녔어요. 그런데 신을 싣고 다닌기억은 별로 없어요.
항상 맨발로 걸어 다녔던 것 같아요.
옷은 뭘 입었는지 책가방은 뭐 였는지 고무신은 맨날 챙겨 신었는지. 기억이없어요. 
무소유의 자세였지 않나 싶네요

여름에 검정 고무신 신고 볼을 차면 발에 땀이 나서 볼보다 고무신이 더 멀리 날아가
볼만 찼던 기억과 수업시간에 떠는 아이 이름적었던 기억과 유리창 닦다가 말벌에게 
유리창닦던 타올(그때는 행주로 유리창 닦는 수건을 집에서 꿰매서 엄마가 만들어 주었어요)던져서 
말벌에게 아랫입술을 쏘여서 할머니가 꿀 발라주고 꿀 먹었던 기억,땅에서 벌들이 나오는 구멍 찾아서 우산으로 구멍을 막 뭉개면 한꺼번에 땅벌들이 쏟아져 나올때 잽싸게 도망가다가 머리에 쏘인 기억,

완전 어렸을적 같은데 골목에는 한번씩 닭들이 다녔어요.
윗집 닭들인데 빨간벼슬에 닭 '장닭'이라고 했었는데 그때는 나보다 더 컸던것같아요.
자꾸 쪼니까 맨날 도망 다니기 일쑤였죠.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어요. 

국민학교 다닐때 맨날 걸어다녔어요. 어떻게 그렇게 걸어 다녔는지 모르겠어요. 
당연히 걸어다니는게 자연스러웠으니까요. 금초를 해마다 다녔는데 그 거리가 많이 많이 멀더라구요. 
참 대단했던 것 같아요.그때는 길 자체가 비포장이어서 굴러 다니는 돌멩이들도 참 많았지요.

큰 절벽 같은 산도 돌아서 걷다보면 절벽에 깍여진 바위들이 보이는데 그 바위를 좋아했었어요 
어린마음에 참 든든한 느낌이있어서 참 좋아했답니다. 교과서에 '큰 바위 얼굴'을 읽고 
그 마음이 더 했던것 같기도하고 그러네요.
걸으면서 일부러 한번씩 쳐다보면서 믿음직스러움을 혼자 마음속으로 느끼며 든든해했었지요

양말을 싣고 다닌 기억이 전혀 나질 않네요. 거추장스러운 걸 싫어해서 일까요? 
겨울에는 신었던것같아요. 얼음위에서 놀다가 물에 빠지면 모닥불에 양말 말리다 
양말에 구멍낸 기억이있어서요.

벽돌만들때 사용하는 틀이었나요. 그 틀에 굵은철사 끼워서 썰매(얼음썰매)만들고, 
창은 굵은나무 2개 산에서 구해서 굵은 못 대가리는 제거하고 불에 달궈서 나무에 고정해서 창 만들어 겨울에 맨날 끼고살았죠. 강 얼음위에서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어요. 철사로 고정하면 상하좌우 굴러다녀서 잘 조정해서 타야하죠. 업그레이드 버전은 굵은철사가 아닌 스케이트 날 처럼 '날'을 박아넣으면 한쪽방향으로만 가는거죠. 단점은 직진만 된다는거였죠.

또 다른 놀이는 얼음중에서도 얼음이 얇은쪽이 있어요.
얼음에 금이가게하면 표면이 '울렁울렁'해져서 물결이 치는 것처럼 만들어서 
썰매를 타고 신속하게 통과하는 거죠. 일명'고무다라이'라고 불렀어요.
썰매를 빠른속도로 타고 통과하면 파도가 치는 것처럼 얼음이 울렁거림을 느끼며 잽싸게 통과하는 거죠.
꿀렁꿀렁 쓰릴을 만끽하는거죠. 계속하다가 얼음이 더 약해지면 얼음이 깨지는거고 물에 빠지는거랍니다.

어린맘에 언제 깨지겠다는 느낌도 알았으니까 얼마나 많이도 얼음이랑 뒹굴었을까요.

늘 자연속에서 뒹굴며 살았던것같아요. 산으로 들로 강으로.
친구 몇명이 있었지만 늘 마을형들을 그렇게 쫒아 다녔어요. 어린맘에 수준이 안 맞다고 생각해서.
친구들이랑 놀았던 기억이 전혀 없거든요. 

여름 산에는 '으름'이 있었었어요. 안에 씨가 많았고 쪼끄만데 맛은 '바나나맛'이 나는 열매.
그때는 바나나맛이 어떤가 몰랐죠. 덜익은 건 따다가 벼껍질 모아둔('딩개'라고했나 '딩겨'라고했나)
그  속에 넣어두면 으름이 익어요. 그렇게해서 먹곤했었죠. 

아이스께끼 아저씨가 오토바이타고 마을에 한번씩오면 집에서 잽싸게 비료포대 1개 갖다주면 아이스께끼 1개 바꿔먹고 했던 시절이었으니까요.엿장수아저씨 큰가위치는 소리도 너무 좋았어요.그 소리를 들으면 엿장수 아저씨왔구나 해서 집에 멀쩡한 살림살이 냄비나,삽,곡괭이. 갖다주고 엿 바꿔먹고,
할머니는 다시 찾아오시고.. 도망다니고.. 그랬던 시절.

뱀장수도 오토바이타고 한번씩 왔었답니다. 집에 뱀을 잡아서 비료포대에 꽁꽁묶어서 준비 해 뒀다가 
뱀장수 아저씨오면 팔았나? 그것까지는 기억나지 않아요.
뱀을 무서워했거든요.오토바이 뒤에 뱀통에서 뱀들이 꿈틀댔던 기억은 어렴풋나네요.

아무런 욕심도 아무런 불만도 없었던 마냥 뛰어놀기 바빴던 천진난만한 어린시절이었죠.

여동생은 맨날 나 찾아서 쫓아 다녔데요. 그리고 옆집에 같은 또래 여자애가 있었는데 물론 나이도 같았고 친군데 항상 같이있었데요.기억이 없는데.. 

기억에 있는건 사고친게 있거든요.경운기 시동(수동)건다고 돌리는데 V벨트 2개가 있는데 얘가 거기에 손가락 넣었던거예요 '손가락 낀 사껀' 그건 기억나요. 
왜 거기에 손가락을 넣냐고... 손가락이 확 껴서 무슨일 있었던건 아니고 살짝 낄려다 뺐나봐요 
조금 아프니까 엄살에 엄살... 엄청나게 큰소리로 울기시작하자 양쪽 집안 엄마아빠 다 뛰쳐나와서...

맨날 같이 붙어 다녔데요. 그래서 마을에 어르신이(마을형 아빠) 별명을 붙여주었어요. 
난'수꿩', 갠'암꿩' 이라고놀러가면 '수꿩왔어' 놀리셨죠. '저 수꿩 아닌데요' 불만이었어요 
난 그게 아닌데. 같이 다니지 않았거든요 분명히 근데 맨날 붙어다녔데요.
 
결론은 '난 아무것도 개의치않고 다녔는데 걔가 나를 따라다녔다' 는거죠. 
같이다녔으면 챙기면서 다녔겠지요.. 오죽하면 여동생이 맨날 나를 찾아다녔겠어요.



'COCKTAIL'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칵테일 용어 해설3  (0) 2016.06.15
칵테일 용어 해설2  (0) 2016.06.15
칵테일 용어 해설1  (0) 2016.06.15
생각해 볼 칵테일  (0) 2016.06.15
주의해서 만들 칵테일3  (0) 2016.06.15
주의해서 만들 칵테일2  (0) 2016.06.15
주의해서 만들 칵테일1  (0) 2016.06.15
칵테일 조주 용어 및 조주 순서  (0) 2016.06.15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속주 안동소주  (0) 2016.06.15
내스승님_백재현마스터(교수님)  (0) 2016.06.15